네덜란드 위안부 피해자, 개싸이코 사과 못 받고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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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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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사과 전엔 못 죽는다"던 최후의 유럽계 위안부 떠나다
전수진 입력 2019.09.11.
이코노미스트, 얀 루프 오헤른의 삶 부고 기사로 다뤄
'위안(comfort)' 대신 '강간' 표현으로 일본군 범죄 부각
네덜란드계 여성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얀 루프 오헤른의 젊은 시절. 지난달 타계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고(訃告)란은 최근 영면한 인물 중 세계적으로 울림을 가진 이들을 선택해 집중 조명한다. 최신호(9월7~13일)가 다룬 이는 네덜란드계 호주인 얀 루프 오헤른(1923~2019)이다. 일본군에게 납치돼 인도네시아에서 3개월 동안 ‘위안부’로 강제 수용됐던 여성이다. 유럽계 위안부 피해자 중 그간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는 생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절대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19일 호주 애들레이드 자택에서 96세를 일기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과거를 감추고 평범한 주부이자 두 딸의 엄마로 살던 그는 1991년 고(故) 김학순 위안부 할머니가 최초로 위안부 사실을 공개 증언한 것을 우연히 본 뒤 용기를 냈다. 이듬해 호주 언론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고, 이후 미국ㆍ유럽ㆍ일본 등지에서 증언 활동을 펼쳤다. 김학순 할머니 등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과도 활발히 교류했다. 자서전 『50년간의 침묵(Fifty Years of Silence)』은 6개 언어로 번역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오헤른이 인도네시아 일본군 위안소에서 겪은 일도 소상히 소개했다.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부유한 무역상의 딸로 태어난 그는 수녀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이었다. 그러다 42년 일본군이 인도네시아를 침공했고, 2년 뒤인 44년 납치됐다. 당시 21세였다.
한국과 대만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와 나란히 앉은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오른쪽)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는 그와 6명의 네덜란드계 여성들이 “(인도네시아) 스마랑의 일본군 사창가(brothel)로 끌려갔다”고 표현했다. ‘위안부’라는 표현 대신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음을 강조한 것이다. 오헤른은 ‘위안부(comfort woman)’라는 말을 혐오했다고 한다. “일본군을 위안하는 역할이라는 이 말에 모욕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울부짖고 소리를 지르며 일본군에게 저항하는 오헤른에게 일본군은 칼을 들이대며 옷을 찢고 강간했다(raping)”고 전했다. 그는 나중엔 스스로 삭발을 했는데, 일본군이 그런 자신을 찾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스마랑 위안소에서의 세월은 오헤른에게 평생 상처를 남겼다. 위안소 방마다 꽃 이름이 붙어있던 까닭에 그는 평생 꽃 선물을 제일 싫어했고, 어두워질 무렵만 되면 불안 증세를 보였다. 방마다 두꺼운 커튼을 쳐서 아예 밤낮 구별이 안 되게 했을 정도였다.
전쟁은 일본의 패배로 끝나고 그도 자유의 몸이 됐다. 60년 영국인 장교 톰 루프와 결혼해 호주로 이사했다. 스마랑에서의 악몽은 남편에게만 한 번 얘기했고 그 뒤론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처음엔 아이도 낳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남편의 위로로 마음을 추스르면서 가족도 꾸렸다.
스마랑과 관련된 물건은 흰 손수건 하나만 남기고 없앴다. 그 손수건엔 함께 스마랑으로 끌려갔던 네덜란드계 여성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미엡, 게르다, 엘스, 애니, 베티, 라이스’. 루프 오헤른은 이 손수건을 고이 접어 화장대 안 서랍에 소중히 간직했다. 두 딸이 장난삼아 손수건을 만지려고 하면 엄하게 야단을 쳤다고 한다.
지난달 21일 오후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401차 정기 수요집회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네덜란드계 호주인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의 영정이 놓여져 있다. [연합뉴스]
두 딸은 자애롭던 어머니가 왜 손수건에 유난히 예민해 했는지 92년에서야 알게 됐다. 김학순 할머니의 고백에 용기를 얻어 루프 오헤른도 스마랑의 악몽을 털어놓으면서다. 가족은 그를 위로했다. 손녀인 루비 챌린저는 지난해 스마랑에서 할머니가 겪은 일을 다룬 단편 다큐멘터리 ‘데일리 브레드’를 제작했다. 직접 출연한 이 작품에서 챌린저는 스마랑 위안부 수용소에 갇힌 네덜란드 여성들이 학대와 굶주림 등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남는 모습을 그렸다.
오헤른이 쓴 자서전의 한국어판 표지엔 그와 길원옥(92) 할머니 등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손을 꼭 잡고 미소 짓는 사진이 실려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다루는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길원옥 할머니 등 피해자 할머니들의 건강은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정의기억연대 관계자는 11일 통화에서 “오헤른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가) 동아시아에 국한된 사안이 아닌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 임을 국제사회가 인식하는 데 큰 역할을 하셨다”며 “고인께서 겪으신 큰 아픔을 기억하겠다”고 추도의 뜻을 밝혔다. 국내에선 올해 들어서만 1월에 김복동 할머니, 3월 곽예남 할머니 등 5명의 피해자 할머니가 별세했다. 이에 따라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20명으로 줄었다.
전수진 입력 2019.09.11.
이코노미스트, 얀 루프 오헤른의 삶 부고 기사로 다뤄
'위안(comfort)' 대신 '강간' 표현으로 일본군 범죄 부각
네덜란드계 여성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얀 루프 오헤른의 젊은 시절. 지난달 타계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고(訃告)란은 최근 영면한 인물 중 세계적으로 울림을 가진 이들을 선택해 집중 조명한다. 최신호(9월7~13일)가 다룬 이는 네덜란드계 호주인 얀 루프 오헤른(1923~2019)이다. 일본군에게 납치돼 인도네시아에서 3개월 동안 ‘위안부’로 강제 수용됐던 여성이다. 유럽계 위안부 피해자 중 그간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는 생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절대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19일 호주 애들레이드 자택에서 96세를 일기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과거를 감추고 평범한 주부이자 두 딸의 엄마로 살던 그는 1991년 고(故) 김학순 위안부 할머니가 최초로 위안부 사실을 공개 증언한 것을 우연히 본 뒤 용기를 냈다. 이듬해 호주 언론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고, 이후 미국ㆍ유럽ㆍ일본 등지에서 증언 활동을 펼쳤다. 김학순 할머니 등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과도 활발히 교류했다. 자서전 『50년간의 침묵(Fifty Years of Silence)』은 6개 언어로 번역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오헤른이 인도네시아 일본군 위안소에서 겪은 일도 소상히 소개했다.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부유한 무역상의 딸로 태어난 그는 수녀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이었다. 그러다 42년 일본군이 인도네시아를 침공했고, 2년 뒤인 44년 납치됐다. 당시 21세였다.
한국과 대만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와 나란히 앉은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오른쪽)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는 그와 6명의 네덜란드계 여성들이 “(인도네시아) 스마랑의 일본군 사창가(brothel)로 끌려갔다”고 표현했다. ‘위안부’라는 표현 대신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음을 강조한 것이다. 오헤른은 ‘위안부(comfort woman)’라는 말을 혐오했다고 한다. “일본군을 위안하는 역할이라는 이 말에 모욕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울부짖고 소리를 지르며 일본군에게 저항하는 오헤른에게 일본군은 칼을 들이대며 옷을 찢고 강간했다(raping)”고 전했다. 그는 나중엔 스스로 삭발을 했는데, 일본군이 그런 자신을 찾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스마랑 위안소에서의 세월은 오헤른에게 평생 상처를 남겼다. 위안소 방마다 꽃 이름이 붙어있던 까닭에 그는 평생 꽃 선물을 제일 싫어했고, 어두워질 무렵만 되면 불안 증세를 보였다. 방마다 두꺼운 커튼을 쳐서 아예 밤낮 구별이 안 되게 했을 정도였다.
전쟁은 일본의 패배로 끝나고 그도 자유의 몸이 됐다. 60년 영국인 장교 톰 루프와 결혼해 호주로 이사했다. 스마랑에서의 악몽은 남편에게만 한 번 얘기했고 그 뒤론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처음엔 아이도 낳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남편의 위로로 마음을 추스르면서 가족도 꾸렸다.
스마랑과 관련된 물건은 흰 손수건 하나만 남기고 없앴다. 그 손수건엔 함께 스마랑으로 끌려갔던 네덜란드계 여성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미엡, 게르다, 엘스, 애니, 베티, 라이스’. 루프 오헤른은 이 손수건을 고이 접어 화장대 안 서랍에 소중히 간직했다. 두 딸이 장난삼아 손수건을 만지려고 하면 엄하게 야단을 쳤다고 한다.
지난달 21일 오후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401차 정기 수요집회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네덜란드계 호주인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의 영정이 놓여져 있다. [연합뉴스]
두 딸은 자애롭던 어머니가 왜 손수건에 유난히 예민해 했는지 92년에서야 알게 됐다. 김학순 할머니의 고백에 용기를 얻어 루프 오헤른도 스마랑의 악몽을 털어놓으면서다. 가족은 그를 위로했다. 손녀인 루비 챌린저는 지난해 스마랑에서 할머니가 겪은 일을 다룬 단편 다큐멘터리 ‘데일리 브레드’를 제작했다. 직접 출연한 이 작품에서 챌린저는 스마랑 위안부 수용소에 갇힌 네덜란드 여성들이 학대와 굶주림 등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남는 모습을 그렸다.
오헤른이 쓴 자서전의 한국어판 표지엔 그와 길원옥(92) 할머니 등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손을 꼭 잡고 미소 짓는 사진이 실려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다루는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길원옥 할머니 등 피해자 할머니들의 건강은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정의기억연대 관계자는 11일 통화에서 “오헤른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가) 동아시아에 국한된 사안이 아닌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 임을 국제사회가 인식하는 데 큰 역할을 하셨다”며 “고인께서 겪으신 큰 아픔을 기억하겠다”고 추도의 뜻을 밝혔다. 국내에선 올해 들어서만 1월에 김복동 할머니, 3월 곽예남 할머니 등 5명의 피해자 할머니가 별세했다. 이에 따라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20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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