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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하면 증거인멸도 초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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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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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를 지적한 이후 증거인멸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컴퓨터, 휴대전화의 관련 기록을 철저히 삭제했다. 보안 전문가가 동원된 삭제 방법 또한 남달랐다.



‘부회장’은 증거인멸 의혹에서 빠지지 않는 키워드였다. 삼성은 2018년 5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삼성전자·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 등에서 수차례 증거를 인멸했다고 의심을 산다. 검찰의 삼성바이오 회계 사기 의혹 수사를 대비하는 차원이었다.



2018년 5월1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라고 판단하자, 삼성은 투 트랙 전략을 구사했다. 바로 다음 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금감원 발표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동시에 이후 열릴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를 대비했다. 금감원의 발표를 최종적으로 판단해 검찰 고발 여부를 결정하는 곳이 증선위다. 증선위가 분식회계가 맞다고 발표하면 곧바로 검찰 수사로 이어질 상황이었다.

사흘 후인 2018년 5월5일 삼성전자 사업지원TF와 삼성바이오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는 삼성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했던 미래전략실의 후신으로 통한다. 검찰 수사에 대비한 증거인멸도 이때부터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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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증거인멸 혐의를 받는 삼성전자 보안선진화TF 소속 간부들이 5월10일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검찰이 국회 법사위 전해철·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삼성 임직원 8명의 공소장 내용을 종합하면, 먼저 삼성바이오 보안 담당 직원이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 임직원의 노트북에서 단어 검색을 했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의 보안 전문인력이 나와 또 컴퓨터를 살폈다. 이처럼 여섯 차례 이상 이뤄진 키워드 삭제는 점차 범위를 넓혀갔다. ‘JY’ ‘VIP’ 등이 추가됐다(18~19쪽 인포그래픽 참조). JY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름의 약자로 삼성그룹 문서에서 쓰이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합병’ ‘상장’ ‘미래전략실’도 삭제 키워드였다.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라는 이슈와 연관된 단어들이기도 하다.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 내부 단속 후, 삼성전자 사업지원TF와 보안선진화TF 직원들이 다시 자료 삭제를 점검했다. 2018년 8월 이들은 대상자인 삼성바이오 임직원들에게 컴퓨터를 들고 회의실로 오게 해서 일일이 확인했다. 삼성바이오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는 회의실로 가지는 않고, 이들이 김 대표의 사무실로 찾아가 체크했다.

사내 컴퓨터만 챙긴 게 아니었다. 움직이는 PC라 할 수 있는, 검찰 압수수색의 주요 대상인 휴대전화도 꼼꼼하게 살폈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에서 나온 보안 담당 직원은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 임직원의 휴대전화 속 SNS·이메일·인터넷 검색 기록을 살폈다. 키워드 ‘JY’ ‘부회장’ 등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일부 직원의 휴대전화는 공장에서 막 만들어진 새것처럼 ‘공장 초기화’를 해버렸다.

휴대전화 사용자도 모르게 인터넷에 관련 자료가 업로드되었을 가능성도 제거했다. 각 임직원들의 휴대전화 속 계정 동기화 기능을 해제했다. 삼성페이 같은 기능이 있는 삼성 계정도 삭제했다. 구글 등 외부 서버로 자동 전송될 경우를 막기 위해서였다. 2016년 박영수 특검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이었던 김영재 원장 부부의 동선을 확인한 방법이었다. 이들은 청와대 출입을 부인했지만, 구글 서버에 올라간 휴대전화 위치 기록 기능 때문에 거짓말이 들통났다.

임직원들 계정 동기화 기능도 해제


보안 전문가가 동원된 삭제 방법 또한 구체적이었다. ‘파일이 삭제된 공간에 1KB짜리 파일을 다량으로 꽉 채워넣은 후, 한꺼번에 지우면 삭제된 파일이 복구되지 않는다. 그러니 공용 서버에 이렇게 작업하라는 지시를 해 복구가 불가능하게 하라’ ‘(삼성바이오) 재경팀 공용 폴더가 삭제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로그 기록도 삭제하라’ ‘재경팀 공용 폴더가 저장되어 있는 백업 서버도 정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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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15년 12월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 두 번째)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 왼쪽) 등이
인천 송도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에 참석했다.

이 과정에서 영구 삭제 프로그램인 QNA 프로그램이 사용됐다. 삭제된 파일은 삼성바이오 재경팀 공용 폴더에 저장되어 있던 ‘부회장 통화 결과 폴더 속 전화통화 결과.gul’ ‘바이오젠 제안 관련 대응 방안(부회장 보고) 폴더 속 바이오에피스, 바이오젠사 제안 관련 대응 방안_1.docx’ 등이 있다(gul은 삼성 내부에서 사용하는 문서 프로그램인 훈민정음의 확장자 파일명이다).

기록을 삭제하는 것으로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 삼성은 PC 등을 아예 물리적으로 없앴다. 2018년 5월 초, 삼성바이오 임직원 20여 명의 컴퓨터가 포맷되거나 교체됐다. 다만 이 자료를 따로 보관했다. 인천 송도의 삼성바이오 3공장 1층 회의실 바닥이 은닉 장소로 낙점됐다. 삼성바이오 3공장은 삼성이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해낸다”라며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곳이다.

삼성바이오 보안 담당 안 아무개 대리 등은 이곳에서 이중 구조로 만들어진 공장 바닥의 장판을 걷어내고, 바닥 합판의 나사를 풀었다. 합판을 빼고 남은 공간에다 노트북과 데스크톱 컴퓨터를 넣고 다시 합판을 끼운 다음 장판을 덮었다.

바닥에 숨기기는 한 차례로 끝나지 않았다. 2018년 6월에는 삼성바이오 1공장 6층 통신실이 이용됐다. 삼성바이오 54TB 용량의 백업 서버 등 총 서버 3대를 바닥에 넣었다. 여기 또한 이중 바닥 구조로 설계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흡착기를 이용해 바닥을 열었다. 가로·세로 60㎝,두께 3~4㎝ 남짓한 정사각형 타일을 들어올려, 그 아래 40㎝ 정도 되는 공간에 서버를 넣고 다시 타일을 덮었다.

현재 증거인멸 혐의로 삼성 임직원 8명이 구속기소됐다. 여기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금고지기로 불리는 이왕익 삼성전자 재경팀 부사장부터 김홍경 사업지원TF 부사장, 백 아무개 사업지원TF 상무 등이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포함됐다. 증거인멸을 직접 실행한 안 아무개 삼성바이오 보안 담당 대리도 구속 상태다.

삼성은 증거인멸 자체를 부인하지는 못한다. 이에 대해 공식 사과도 했다. 6월14일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는 “증거인멸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대단히 송구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진행 중인 검찰 수사에도 성실한 자세로 적극 협조해서 진상이 신속히 확인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다만 증거인멸 의도가 회계 사기 의혹을 숨기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별건 수사 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행해진 일이라는 주장이다. 분식회계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논리의 연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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