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김용희 씨는 곡기를 끊고 강남역사거리 CCTV 철탑에 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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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란 범죄조직의 실체를 폭로하면 삼댓알이 미친놈으로 몰아갑니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고 피해자들이 있는 현실입니다.
http://www.vop.co.kr/A00001422057.html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60)씨는 지난(달) 10일 새벽 서울 강남역사거리 교통 CCTV 철탑 위에 올라 자신을 가뒀다. 오늘(19일)로 20여 미터 높이의 원형감옥에 갇힌 지 40일이 됐다. 또 그는 현재 단식 47일 차다. 고공농성에 돌입하기 전인 지난달 3일부터 곡기를 끊었다.
30여년 전 그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행사하기 위해 삼성에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사측의 잔혹한 인권 탄압과 해고였다. 그는 삼성의 사과와 복직을 촉구하며, 인생을 바쳐 24년 간 대기업 삼성과 싸워왔다. 그리고 지금, 벼랑 끝에 내몰린 김 씨는 결국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노동조합 만들려다 삶이 짓밟힌 노동자
대한민국 최고 재벌과 벌인 24년 간의 싸움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인 강남역 사거리 가운데에 우뚝 솟은 철탑 하나가 있었다. 김용희 씨가 있는 고공농성장은 전봇대에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려져 있었다. 소음과 매연이 가득한 곳이었다. 고공농성장 아래 도로에서는 자동차들이 거침없이 달리고 있었다. 고공농성장 바로 밑에는 안전매트리스가 있었고 주변에는 폴리스 라인이 쳐진 상태였다. 근처엔 경찰차가 상주하고 있었다.
19일 민중의소리는 삼성 해고자 김용희 씨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왜 이곳에 고공농성장을 차렸는지 부터 먼저 물어봤다. 휴대전화 너머로 김 씨의 고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성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에요. 청와대 앞이나 국회 앞에서도 해봤는데, 아무런 미동도 없었고 아무도 관심 갖지를 않았어요. 여기서 농성을 하면 최소한 나중에 누가 물어볼 때 삼성이 모른다고는 얘기하지 못할 거 아니에요."
그가 있는 곳은 높고 좁다. 그 안에서 움직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가 일어서서 밖을 내다보자, 경찰차 안에서 상주하고 있던 경찰관이 나왔다. 경찰관은 그가 기자와 통화하는 모습을 보더니 이내 안심했다.
"무릎을 간신히 꿇을 수 있는 공간이예요. 그 가운데 전봇대가 있기 때문에 그걸 보듬고 새우잠을 잔다고 하면 상상이 되실까요?"
위와 옆을 비닐로 쳤지만, 한여름의 타오르는 햇빛과 곧 다가올 태풍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달 23일 고공농성장에 오른 의료진은 "철탑이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에 어지럼증이 가중된다"고 했고, "난간이 낮아 일어설 때 추락할 위험이 크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전했다.

김 씨는 1982년 12월 삼성항공(주) 창원 1공장에 입사하며 삼성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1984년 2월앤 삼성시계(주)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그가 가혹한 탄압을 받게 된 것은 1990년부터 였다. 그해 8월, 김 씨는 삼성그룹 경남지역 노조 설립 준비위원장이 돼, 노조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러자 사측이 노조 설립을 포기하라며 건장한 청년을 보내 자신을 폭행하기도 하고 납치해 15일 간 감금하기도 했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다. 그가 가장 가슴 아파 하는 부분은 사측이 부모님을 회유협박했는데, 이에 시달리던 그의 아버지가 유언장을 남기고 행방불명됐다는 점이다.
1991년 2~3월, 그는 사원들에게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알리고, 회사 비리와 관련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다 그해 3월 28일 사측으로부터 징계 해고를 당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법정 소송을 진행했는데, 1994년 해고무효확인소송 대법원 상고심 결심공판을 앞두고 삼성 측 직원들이 찾아와
'상고 취하서를 작성해주면 계열사에 1년 근무하게 한 후 원직에 복직시켜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는 그해 1월 복직합의서를
작성했고, 3월 대법원에 상고포기서를 제출했다.
김 씨는 1994년 삼성물산 건설지부 러시아 스몰렌스키 지부에 발령이 났다. 이때도 삼성은 김 씨에게 노조포기각서를 강요했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의 손과 팔을 포승줄로 5시간 동안 묶어놓고 복직합의서 등 일체의 서류를 갈취해 갔다고 한다.
1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삼성은 원직 복직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1995년 삼성은 해고통보서도 없이 그를 해고 했다.
김용희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32살에 해고돼서 34살에 복직됐어요. 1년 근무하고 하고 나와서, 노조 포기 안 한다고 해고통지도 없이 출근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 뒤로 24년동안 싸우고 있어요. 너무 억울합니다."
고공농성장에서 60세 정년 맞은 김용희 씨
"나는 스스로에게 사형선고 내렸다"

지난 10일은 김 씨의 60번째 생일이었다. 그렇게 김씨는 일터가 아닌 고공농성장에서 정년을 맞았다. 정년 전에 복직하고 싶다는
해고노동자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날 경찰과 소방당국이 농성장에 진입하려고 해, 연대하는 시민들이 고공농성장 앞에서 밤새
지키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저는 생일이 지나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저는 스스로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건강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삼성의 무지막지한 노조 파괴 탄압 범죄행위를 밝히는 데에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로 한다면 제가 기꺼이 마중물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저 말고도 삼성 해고자들이 더 있습니다. 23년째 싸우고 있는 삼성중공업 해고자와 7년째 싸우고 삼성SDI 해고자가 있습니다. 해고 문제가 빨리 해결 됐으면 좋겠어요."
김 씨의 곁에는 20년 넘게 해고의 아픔을 겪고 있는 동지가 있다. 23년째 투쟁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중공업 해고노동자다. 그는 지금 김 씨의 고공농성장 아래를 홀로 지키고 있다.
이재용 씨는 "(김 씨가) 효소와 소금도 끊겠다는 의지였으나 연대하는 동지들이 간곡하게 설득해 막았다"며, "지금은 의사의 진료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소방서의 사다리차를 이용해야 고공농성장에 올라갈 수 있어 의사의 진료를 받는 일도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김 씨는 그마저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 14일 김 씨를 진료한 의사 홍종원 씨는 "(김 씨가) 어지럼증이 심하고, 머릿 속이 백지가 되는 순간이 있다"며
"근골격계의 통증이 심하고 오랜 단식으로 팔, 다리, 엉덩이, 근육 모두 소실돼 앉아 있기도 힘든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혈압과 맥박은 유지되고 있으나 저혈당으로 인한 쇼크와 뇌손상이 우려된다"며 "추후에 신체에 후유증이 남을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노동자를 이윤을 위한 재료 취급하는 반인권기업"
김용희 씨 "기필코 사과 받고 명예회복 할 것"

해고자들의 절박한 외침에 삼성은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5일 고공농성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이하,
시민사회대책위)는 김 씨의 복직 등을 위한 교섭 요구 면담을 위해 삼성 측에 공문을 보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또 김
씨의 마지막 근무처였던 삼성물산 건설부문 상일동 본사로 찾아갔으나 대표이사와도 만나지 못했다.
삼성물산에 찾아갔던 시민사회대책위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는 삼성이 노동자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삼성은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비용' 혹은 기업의 이윤을 남기기 위한 '재료' 정도로 취급해 왔다. 특히 헌법에
반하는 '무노조 경영'을 80년 동안 유지해왔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국내에서 국외까지 무노조경영을 통해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박탈함으로써 저임금, 초과착취를 가능하게 만들었었던 '반(反)인권기업'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삼성이 김용희 씨 복직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큰 진전이 없다.
지난 8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등 66개 시민단체들이 '노조 설립 과정에서 삼성이 자행한 인권 침해 실태를
조사하라'고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하지만 인권위는 이 사안이 인권위법에 규정하고 있는
조사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이를 각하했다. 단,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 및 활동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으로 기업 인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관련 정책 검토 등을 하겠다고 밝혔다.
여전히 김용희 씨는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도 굳은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인터뷰 말미, 김용희 씨는 삼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삼성은 노조 파괴 범죄 행위에 대해 지금까지 시간을 질질 끌며 무대응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어느 정도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분명히 삼성의 범죄행각에 대해 세상에 알려내고, 기필코 사과를 받고 명예회복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언론에 절박하게 호소했다.
"24년 동안 저의 사정을 아는 언론사들이 안타깝다면서도 삼성의 광고비 때문에 취재를 거부하셨어요. 저는 언론이 이 사회를 정화하는 필터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의 노조 파괴 악행을 끊을 수 있도록 언론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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