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들의 오딧세이] 손으로 치료하는 의사를 뜻하는 ‘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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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분야 중 ‘외과(外科)’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외상(外傷)을 주로 다루거나, 몸 안의 장기를 몸 밖(體外)으로 드러내 치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내과(內科)의 반대말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외과를 뜻하는 ‘서저리(surgery)’는 라틴어 ‘키루르기아( chirurgia)’ 에서 왔고, 이것의 어원(語源)은 다시 그리스어 ‘카이로르구스( kheirourgós)’ 이다. 그리스어로는 ‘손( kheiro/chir )’과 ‘일( urgos/urgia )’이 결합한 형태로 ‘손으로 하는 일(working by hand)’이란 뜻이다.
키루르기아( chirurgia )에 종사하는 사람을 라틴어로 ‘키루르구스(chirurgus)라 부르고 이것이 영어 ‘서전(surgeon)’이 되었다. 서전은 우리말로 외과의(사)로 번역한다.
권위 있는 의학사전(Dorland’s Medical Dictionary)에서 ‘surgery’를 찾아보면 ‘질병, 부상, 기형을 손을 쓰거나 수술로 치료하는 의학 영역(that branch of medicine which treats disease, injuries, and deities by manual or operative methods)’으로 역시 ‘손’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외과의의 특기인 ‘수술(手術)’ 역시 ‘손의 기술(手+術)’이란 것을 고려하면 외과는 어원적으로는 ‘손으로 치료하는 의학 영역’을 뜻한다.
그렇게 보면 외과를 ‘수과(手科)’로 바꾸던지, 수술을 ‘외술(外術)’로 바꾸는 것이 통일성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왜 수술 의학을 외과로 부르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외과의 반대 개념인 내과의 이름이 어찌 정해졌는지를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우리가 의사로 번역하는 영어 ‘피지션(physician)’ 은 그 어원이 ‘몸’이나 ‘자연’을 뜻하는 라틴어의 ‘피지스(physis)’이다. 여기서 ‘자연과학/물리학(physics)’를 거쳐 영어 시험에 단골로 등장하던 ‘물리학자(physicist)’라는 이름이 생겼다. 반면에 몸을 뜻하는 의미로 내려간 것이 몸의 학문을 뜻하는 ‘생리학(physiology)’과 ‘(내과)의사(physician)’이다. 노벨상에서는 생리학/의학을 한 분야로 수여한다.
오래전 의사들은 그냥 피지션(physician)이었다. 그들이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몸의 기능(생리학)을 공부하고, 질병에 대한 학문(병리학, pathology)’을 섭렵한 후 사람을 치료할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의 몸속 병을 직접 볼 수는 없었고 병이 밖으로 드러내는 증상을 통해 병을 진단했다. 그리고 그 진단에 맞는 약을 아픈 몸속에 주입했다. 내복약(內服藥)을 먹이거나 주사와 관장기로 약을 몸 안으로 집어넣었다.
물론 당대에 약보다는 손으로, 칼로 치료하는 ‘서젼(surgeon)’이라 불리는 기술자도 있었다. 그들은 대학도 나오지 않았기에 생리학도 몰랐다. 정규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까막눈이었고, 그저 아버지나 선배로부터 배우고 익힌 칼 기술로 환자를 치료했다. 그들처럼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은 천하기 그지없는 일이라 피지션은 서젼을 결코 의사 동업자로 여긴 적이 없었다.
약으로 치료하는 고상한 의학을 19세기 독일에서는 ‘Innere Medizin(인네레 메디친)’으로 불렀다. 밖으로 드러나는 증상의 내적(內的) 원인을 탐구한다는 고상한 의미였다. 의사들은 보이지 않는 몸속의 문제에 정통해지기 위해 자신의 환자가 죽으면 시신을 해부하여 그 속을 들여다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금은 살아있는 환자들의 몸속을 찍은 사진을 통해 들여다본다. 그렇게 외부로 드러나는 증상과 내적인 원인이 연결되면서 병에 대한 지식 즉, 병리학은 완성되어 간다.
20세기 초 독일 유학파 미국 의사들은 독일의 고상한 ‘Innere Medizin’을 미국에 들여가 영어로 ‘Internal Medicine’으로 불렀고, 이러한 방식의 진료와 치료를 하는 의사들을 ‘Internalist’ 로 부른다. 이것이 내과학/내과의사로 번역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내과학이란 말은 상당한 내적(內的) 통찰력을 가진 의학이란 뜻이다.
하지만 외과에 해당하는 독일어는 ‘Chirurg(키루르크)’로 여전히 ‘손’이 살아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아시아로 유입되면서 내과의 반대 개념인 외과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
동양의학에서도 ‘내/외(內/外)’의학의 개념이 없지는 않았다. 허준의 ‘동의보감’을 살펴보면 정(精), 기(氣), 신(身), 오장육부 등 생명과 신체의 원리에 관한 부분을 내경(內經)편으로 삼고, 머리 얼굴 사지 등 몸의 겉 부위를 외형(外形)편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으로 보면 내/외과 개념에 가깝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자 의(醫)를 분석해보면 ‘예(殹) + 유(酉)’가 결합된 표의 문자(表意文字)란 것을 알 수 있다. 그 뜻을 풀어보면 ‘통에 들어있는 날카로운 칼날’을 ‘손으로 잡으려는 상태’인 예(殹)는 외과 수술을, 술(酒)에서 기원한 글자인 유(酉)는 ‘약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내과의 약과 외과의 칼이 ‘의’ 라는 한 글자에 다 들어있다.
지금의 외과의사들은 몸 속의 장기를 모두 치료하지만, 그것은 근대 의학 역사에서 마취법과 소독법이 발전한 후의 일이다. 그전까지 수술이란 다친 사람에게 붕대를 감는 일, 피부의 종기를 치료하는 일이었다. 또한 탈장, 요로 결석, 백내장 등 대부분 몸의 바깥의 일이었으니 외과로 불린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편 ‘서저리’와 같은 어원에서 온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도 있다. 이 역시 그리스어의 ‘손( chir )’과 ‘행위(praxis)’가 결합된 이름으로 ‘손으로 하는 치료’를 뜻한다. 서저리가 칼을 잡은 손으로 치료한다면, 카이로프랙틱에서는 글자 그대로 손으로 치료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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